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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빚내야 일할 수 있는 사회

[기고]빚내야 일할 수 있는 사회

  • 기자명 남도뉴스투데이
  • 입력 2024.03.1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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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희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사무국장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는 광주시 청년 금융복지 지원 사업인 광주청년드림은행을 운영하며 다양한 청년을 마주한다. 이 중 최근 증가 추세를 보이는 배달 대행 노동자가 처한 경제적 문제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됐다.

이들은 일을 시작하는 단계부터 부채를 가질 뿐 아니라 일을 하는 동안 내내 계속 대출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어려움에 놓여있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22년 플랫폼 종사자의 수는 전년도에 비해 20% 증가했다. 플랫폼 노동자의 64%가 배달·배송·운전 직종이었으며 플랫폼 노동을 주업으로 삼는 비율은 57.7%로 전년 대비 47%가 증가했다. 이들의 월평균 수입은 146만원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가 20235월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배달노동자들은 월평균 220만원의 소득을 벌고 하루 평균 10시간 주 6일 일하고 있다. 시급으로 역산했을 때 시간당 8600원으로 2023년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들을 둘러싼 숫자는 자유로운 개인사업자는 허상이고 결국 일정 수준의 소득을 벌기 위해서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들은 수입 활동에 꼭 필요한 오토바이를 빌리는데 수백만원을 빚지며 일을 시작한다. 매일 오토바이 렌탈비 출근비 등을 청구하는 곳도 있어 쉬기도 어렵다.

렌탈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 일을 그만두면 위약금을 부담하기도 한다. 이런 비용 부담 관행은 배달노동자뿐 아니라 택배 노동자, 보험설계사 등 비전형 노동 현장에도 만연하다.

게다가 배달노동자들의 소득 구조는 이들의 아플 권리도 제한한다. 기본적으로 일별로 급여를 결산하고 플랫폼이 배달 활동의 정도인 활성도에 따라 일을 배분해서 오랫동안 일을 쉬면 배달 의뢰 건수가 적어지기에 몸이 아파도 쉬기 어렵다.

여기에 더해 배달 중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처리 비용, 의료비용은 물론 치료 중 감소한 소득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10명 중 4명이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실태에서는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부족하고 불안정한 소득, 과도한 비용 부담, 위험 부담 증가에 따른 삶의 위기는 곧 부채 문제로 연결된다. 처음에는 오토바이 렌탈, 나중에는 불안정하고 낮은 소득을 대체하기 위한 대출이 발생한다. 이후에는 신용이 낮아도 이용할 수 있는 불법금융이나 사채에 노출된다.

요즘 사채업자들의 광고 문구에 배달 대행 라이더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들이 주요한 대상층이기 때문이다.

라이더들은 이번 달에 일을 많이 못 했어요. 모아둔 돈은 없는데 생활에 필요하고 하니까, 제가 신용이 안 좋으니까 은행은 안되고 사장님한테 빌렸죠’, ‘사장님이잖아요. 안 갚을 수 없으니까, 안되니까 그 개인돈(일수·사채) 하는 분들한테 빌렸죠. 예전에 쓰다가 한 번 정리했었는데 이번에 다시 시작됐죠라고 토로했다.

이처럼 일부 배달대행업체 중 배달노동자를 대상으로 직접 고금리(10~20%)로 사채 영업을 한다. 문제는 고용관계에서 발생한 대출은 일반 사채보다 더 큰 구속력을 갖는다. 고용 문제로 연결될 수 있는 사업주와의 신용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해서 고금리 대출이나 사채를 쓰기도 한다. 일하다가 대출이 생겼고 그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손을 내미는 곳은 가족도 사회도 아닌 대행업체 사장님이다. 이제는 이 자리를 사회가 찾아와야 하지 않을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첫째로 경제적 안전망 및 불법 금융 근절을 위한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지역의 배달대행업체에 만연해 있는 불법사채업에 대한 실태조사와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

둘째로 경제적 문제 해결과 더불어 노동자에 대한 비용 전가 방지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근로조건에 대한 표준 계약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노동에 꼭 필요한 수단을 플랫폼에서 제공하도록 하고 임대 시에는 표준 약관을 세워 공정한 계약을 체결하도록 해야 한다.

산업의 변화로 플랫폼을 통해 일자리를 얻는 직업이 많아진다면 배달노동자뿐 아니라도 얼마든지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 문제의 관점이 아니라 부채 문제의 관점으로도 사회의 면면과 변화를 살펴 사각지대를 찾고 구조적 문제에는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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